전지영·임철민 '백합화' 부르자 11월 단풍빛 캠퍼스는 5월 속으로

작성자
ahneaktai
작성일
2018-11-15 10:57
조회
2325
안익태기념재단 '한국 가곡의 밤’ 성황...조경화·김성혜·홍은지·이정원·이재욱·송기창 출연

"아롱진 백합화 피어날 때~ 가슴에 스며드는 그윽한 향기~ 다소곳이 숨긴 청초한 모습~ 그 누구를 그리는 모습인가~ 꽃 속에 이슬알 보배로워라~ 오 백합화야~"

비록 꽃망울 터지는 계절은 아니지만 쌀쌀한 11월을 뚫고 백합화가 활짝 피었다. 소프라노 전지영과 베이스 임철민이 양명문 시인의 작품에 안익태 선생이 곡을 붙인 ‘백합화’를 부르자 단풍잎 짙은 울긋불긋 캠퍼스는 훌쩍 5월로 돌아갔다.

두 사람이 빚어낸 마법의 목소리는 힐링을 선사했다. “푸른 시내 수양 버들 머리 풀고~솔밭 속 두루미 춤을 춘다~ 보랏빛 꿈같은 전설 속에 피어나는 꽃~ 오 백합화야~" 따뜻한 고음과 포근한 저음이 하나로 뭉쳐 뿜어내는 클라이막스가 끝나자 '브라보! 브라바!' 함성이 콘서트홀을 가득 메웠다.

안익태기념재단이 2일 오후 서울 숭실대학교 한경직기념관에서 개최한 ‘2018 나의 조국, 나의 노래-한국 가곡의 밤’은 한국 가곡 100년의 역사가 파노라마처럼 펼쳐진 흐뭇한 무대였다.

지휘자와 작곡자로 활약하며 세계에 대한민국 민족혼을 알린 애국가 작곡가 안익태 선생의 숭고한 업적을 기리고 계승하는 뜻깊은 의미를 담아, 그가 남긴 가곡 ‘백합화’와 ‘아리랑고개’가 연주됐다. 평소 자주 불리는 곡은 아니지만 위대한 음악가의 숨결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명곡이다.

어디 그뿐인가. 우리의 정서가 듬뿍 깃든 아름다운 노래도 엄선했다. 가곡의 효시인 ‘봉선화’ 이후 히트한 각 시기의 대표작을 골고루 뽑아 프로그램을 짰다. 박태준, 현제명, 이흥렬, 김동진, 김연준, 최영섭, 이수인, 이안삼, 임긍수, 김효근 등 한국 가곡을 대표하는 작곡가 14명의 베스트송을 대방출했다.

소프라노 홍은지는 가을빛 닮은 보이스로 지금의 시기에 딱 어울리는 노래를 준비했다. '아 가을인가(나운영 시·곡)'와 '고향의 노래(김재호 시·이수인 곡)'를 통해 앞으로 펼쳐질 만추와 그 이후의 풍경을 섬세하게 담아냈다.

여성을 심쿵하게 만드는 '만찢남' 바리톤 송기창은 새롭게 편곡된 '눈(김효근 시·곡)'을 선보였다. "가슴에 새겨보리라~ 순결한 님의 목소리~ 바람결에 실려 오는가~ 흰눈되어 온다오~" 철없는 눈송이들이 벌써 흩날릴 것 같은 밤을 선사한 송기창은 '청산에 살리라(김연준 시·곡)'에서도 나지막하면서도 편안한 목소리를 자랑했다.

소프라노 전지영은 '신 아리랑(양명문 시·김동진 곡)'과 '꽃구름 속에(박두진 시·이흥렬 곡)'로 활화산 음역대를 뽐냈다. 독일·스위스·오스트리아 등 유럽에서 20여년 활동하다 최근 국내무대를 노크한 '신인'이지만 지난 6월 열린 '2018 안익태 기념 음악회'에서 '아라리요' 등을 불러 강한 인상을 남겼는데, 이날 다시 한번 더 자신의 진가를 발휘했다. 특히 '꽃구름 속에'를 기승전결이 뚜렷한 서사가 있는 스토리 형식으로 노래해 마치 드라마보듯 빠져 들었다.

베이스 임철민은 '산길(양주동 시·박태준 곡)'과 '그 집 앞(이은상 시·현제명 곡)'을 불렀다. 굵은 저음에 가을 단풍도 금세 반했으리라.

소프라노 김성혜는 임긍수 작곡가의 '나팔꽃(고옥주 시)'과 '강 건너 봄이 오듯(송길자 시)'에서 화려한 고음의 기교를 마음껏 보여줬다. '나팔꽃'은 노랫말이 눈앞에 영상으로 펼치지듯 오페라처럼 드라마틱했다. '강 건너 봄이 오듯' 마지막 부분에서는 목소리로 액센트를 줘 콜로라투라의 필살기를 보여줬다. 그는 최근 젊은 감각이 돋보이는 편안한 찬송앨범 '일 프리모 인노'를 발표한 데 이어 '이안삼 가곡 12집-음악여정' 앨범에도 참여했다.

테너 이재욱은 시원시원한 가창의 끝을 보여줬다. 먼저 '가고파(이은상 시·김동진 곡)'에서 예열을 마친 뒤 '사랑이여 어디든 가서(문효치 시·이안삼 곡)'에서 질주하는 남성미가 폭발했다. 내 손에 닿기만 해도 모든게 사랑으로 변할것 같은 벅찬 감정을 멋지게 표현했다. 이재욱은 지난 2008년 싱가포르 국제가곡제에서 '사랑이여 어디든 가서'를 연주해 이 노래의 빅히트에 힘을 보탰다.

소프라노 조경화는 역시 베테랑이었다. 긴 겨울이 물러간 뒤 불어오는 훈훈한 봄바람이 오버랩되는 '남촌(김동환 시·김규환 곡)'과 남북 화해 분위기에 맞물려 요즘 더 자주 연주되는 '그리운 금강산(한상억 시·최영섭 곡)'을 불렀다. 두 곡 모두 힘을 빼고 부르는 자연스러운 스킬을 제대로 보여줘 박수갈채를 받았다.

테너 이정원은 '내 마음 그 깊은 곳에(김명희 시·이안삼 곡)'와 '뱃노래(조두남 시·곡)'를 선보였다. 특히 '내 마음 그 깊은 곳에'는 감동이 컸다. 새로운 편곡 버전으로 선보여 참신하기도 한데다 분위기도 확 바뀌어 조용조용하지만 더 깊이 있는 노래로 변신했다. 거기에 이정원의 개인기가 더해져 완전히 가슴으로 부르는 노래로 탈바꿈했다. 음악은 벌써 끝났지만 '한번 더 듣고 싶다'는 간절함이 가득했다.

출연 성악가 8명이 서로 짝을 이뤄 부른 이중창도 눈길을 사로잡았다. 전지영·임철민이 공연 피날레 곡으로 '백합화(양명문 시·안익태 곡)'를 선보였다. 김성혜·이재욱은 가슴을 울리는 노랫말이 일품인 '내 맘의 강물(이수인 시·곡)'을, 홍은지·송기창은 왈츠풍의 경쾌한 '우리의 사랑(서영순 시·이안삼 곡)'을 선사했다.

조경화·이정원이 부른 '아리랑고개(구전민요·안익태 곡)'는 잘 만들어진 현대음악 같았다. 우리 전통민요에 뿌리를 두고 있었지만 역시 편곡의 힘이 더해지니 웰메이드 음악이 되었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로 넘어간다~아리랑 고개를 넘어가면 소원의 성취를 하리로다~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를 넘어간다~높은 하늘엔 별도 많고 내 인간은 말도 많다" 두 사람은 자유자재로 음을 가지고 노는 엑설런트의 경지를 보여줬다.

권주용이 지휘하는 서울오케스트라가 멋진 음악으로 성악가들과 호흡을 맞췄고, 안익태기념재단 기획위원인 소프라노 정혜숙이 사회를 맡았다.

[에필로그1]
작곡가 박태준(1900~1986), 현제명(1902~1960), 안익태(1906~1965)는 모두 '숭실' 동문들이다. 이날 콘서트에서 이들의 대표곡인 '산길(박태준)' '그 집 앞(현제명)' '백합화(안익태)'가 잇따라 연주돼 그 의미를 더했다. 이정식 작가가 쓴 '가곡의 탄생'에는 이 세사람의 이야기가 자세히 나와있다. 박태준은 1916년 대구 계성학교를 졸업한 뒤 평양 숭실전문학교에 진학했다. 현제명은 1919년 3·1만세 운동후 숭실전문에 입학했다. 선배였던 박태준은 이때 역시 같은 학교에 재학중이던 대구 계성학교 후배 현제명, 김태술, 권영화와 함께 '교남 4중창단'을 결성했고, 방학때 전국 각지를 돌며 전도활동을 펴기도 했다. 안익태 역시 '숭실'과 연관돼 있다. 안익태는 1918년 4월 평양 숭실중학교에 입학해 첼로 등 음악공부를 한 후, 1921년 일본으로 유학을 떠났다. 한국음악의 튼튼한 기초를 쌓은 세 사람 모두 '숭실'에서 배우고 꿈을 키웠다.

[에필로그2]
이날 콘서트에서 권주용과 이재욱은 오랜만에 해후했다. 두 사람은 대학생때 함께 테너 파트를 맡아 '대학합창단' 활동을 했다. '임산공학(음향악)' 전공이던 권주용과 '디자인' 전공이던 이재욱은 어느덧 흘러흘러 전공이 바뀌었고 '지휘자'와 '성악가'로 만났다. 음악은 이렇게 좋은 만남을 불러온다.

민병무 기자 joshuamin@nat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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